족보(族譜)

  족보는 한종족의 혈연관계를 부계를 중심으로 연계하여 시조로 부터의 세수 생졸(生卒) 문벌(門閥) 가장(家狀) 행적(行蹟) 묘비명(墓碑銘) 묘소의 위치 등을 기록한 가문의 명부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 때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고려 중엽 이후로서 김관의(金寬毅)의 왕대실록(王代實錄), 임경숙(任景肅)의 선원록(璿源錄)이 그 효시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왕실의 친척인 종자(宗子; 종가의 아들)와 종녀(宗女)까지 기재하는 등 족보의 형태를 처음으로 갖추었다.
  고려시대에는 동족간에 족보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었으나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부자 관계가 밝혀져 있는데 이것이 후대에 나온 각 씨족들이 족보를 만드는 근원이 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 책을 관청에서 보관하여 관리를 선발하였다. 또 결혼하는 데에도 이용 하였다. 즉 문벌이 낮거나 귀족이 아닌 종족은 과거를 보거나 관리로 등용되는 데에 많은 차별을 받게 되었으며, 문벌에 차이가 있는 가문과는 혼인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기록문서는 종부시(宗簿寺)라는 관청에서 관리하였다.
  조선조 후기에 들어와서 족보가 보편화 되면서 족보를 만들 때  상신록(相臣錄), 공신록(功臣錄) 등을 보고  그들의 시조나 부자관계를 일부분이나마 알게 되어 이를 근거로 현재의 족보가 만들어진 것이다.

호적(戶籍)

고려 조선시대에도 아래의 호적부와 같은 호적제도가 있었으나 이는 신분관계와 징병 조역 등을 위하여 작성되였으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호적은  1909년 3월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하여  민적법을 시행 신분관계를 혁파하고  동등하게  면사무소에서  면장이 접수를 하고 경찰서장이 독려 감독관으로  재 작성하여 사용하든 것을  1960년 1월 1일 대한민국 법률 제535 호 로 호적법을 제정한 것이다.

제적부 : 제적등본 = 호주의 사망으로 분가 되기 전의 호적원부            # 현재의 30 대 년령에서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 까지 나올 것이다.

호적부 : 호적등본 = 호주의 변동으로 현재의 호주 이내의 가족이 등재된 호적부            # 본적지. 부모의 성명. 호주.  생년월일. 출생지. 성별. 본관. 상벌 등이 기재되여 있다.

조선 시대의 호적장부 

   이 장적은 조선 숙종 4년(1678)부터 정조 13년(1789)까지의 산청군 관하 단성·신안·생비량·신등 4개면을 관할하였던 옛 단성현 주민의 호구기록부이다.  조선시대에는 3년에 한번씩 각 군·현별로 자·묘·오·유년 식년에 호적대장을 작성했는데, 각 가호로부터 가내 거주인구와 소유노비에 관한 호구단자를 신고받아 수령이 확인하고, 이를 대본으로 관내주민을 가좌순에 따라 오가작통하여 면·리별로 작성한 것이다.
   이 호적대장은 2부를 더 정사하여 1부는 감영에, 1부는 호조에 각각 상송하였다. 단성현 호적대장 13책(13식년분)은 옛 단성현아에 비치되었던 것이다.
   호적대장에는 가구의 소재지, 호주와 호주처의 신분·성명·연령·본관·사조·와 동거인 그리고 소유노비 및 고공의 이름·나이·부모등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 전체의 주민상을 연속적으로 살피고 신분확인·징병조역·농민의 편제·노비의 추쇄 등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시대의 호적표

 이 호적표는 본인의 조부께서 1904년 (광무 8년)에 발부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