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의 인식(族譜의 認識)    

  본홈페이지 계시자     양 학 선    

최근 우리나라 젊은 층 일부에서 족보라 하게 되면 선입감부터 해묵은 낡은 것으로 치부하면서 달나라를 가는 우주 시대에 족보가 밥 먹여 주느냐? 하고, 철 부지한 말을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족보가 마치 우리나라에만 있고, 그것도 시대착오적인 양반 자랑이나 늘어 놓아서 족보를 숭상(崇尙)하는 것 때문에 나라가 뒤떨어졌다고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떠 넘기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은, 아직도 지난날  일본 식민지 정책의 조선민족 말살, 조선어 말살, 조선인의 성씨 말살의 세뇌교육의 악몽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일제의 잔재적 편견에 말려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족보가 그렇게 퇴보적이요, 비 현실적 유물이라면 오늘날 선진국에서 왜 경쟁적으로 족보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붐이 일고 있겠는가? 좀더 구체적으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미국에서는 이미 대학에서 족보학과(族譜學科)가 설치된 대학이 있고, 유명한 하바드(Harvard)대학 교수인 와그너 박사는 한국족보 연구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니, 그 분 앞에서 어지간한 족보 지식을 자랑했다가는 큰 코를 다치게 될 정도이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 있는 주립대학에는 미국족보학회 본부가 있는데 그 곳 족보도서관에는 우리나라 각 성씨의 족보가 없는 것이 없고, 세계 각국의 족보가 모조리 수집 되여 있어서 세계 각국의 족보학자들이 매일 수백 명씩 찾아와 연구해 간다고 하며, 모든 족보를 마이크로 필름에 담아서 그 한 부는 거대한 암굴 속에 깊이 비장해서 영구 보존한다고 한다.

미국 족보학회는 세계에서 가장먼저 창설 되었는데, 그것은 고종 19년(1882년)에 한미 수호 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에 와보니, 씨족마다 족보가 있는 것에 탄복해서 우리나라 족보를 가져가, 그로부터 12년 후인 고종 31년(1894년)에 족보학회를 조직하였으니, 1994년으로 족보학회 창립 100주년 기념 행사가 대대적으로 개최되었으며.

1970년도에 오스트리아 족보학회 주최로 세계족보학자들을 많이 초청하였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총회의 재정담당 이사가 그 당시 오스트리아의 현직 대통령이 맡아서 세계적 화제 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하니, 외국에서는 그만큼 족보학자 또는 족보학회를 가장 권위 있는 학회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본보기인 것이다.

미국의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Haley, Alex palmer 1921.8.11~1992.2)는 자신의 선조인, 아프리카 대륙 서쪽 끝 감비아강 하구주변에 있는 지도에도 땅은 보이지 않고 이름만 적힌 조그마한 부족국가 감비아(The Gambia)에서 1750 년 봄 태어나 17세에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노예로 팔려 미국으로 온 자신의 조상인 쿤타-킨테(쿤타 - KINTE=종족이름)로부터, 고난과 온갖 박해를 견디며 오늘에 이른 7대의 기록을 미국전역의 문서보관소와, 대양을 넘어 아프리카를 오가며,  뿌리인 '킨테' 족의 조상을 현지 '그리오트'(아프리카 부족의 역사와 전통을 구전으로 배워 다음세대에게 전하는 사람)를 통해 1964년부터~1976년까지 12년에 걸쳐 찾아 내어 쓴 "뿌리"(Roots) 라는 책을 집필하여 초판 100 만부가 매진 되는 베스트 쎌러로 미국에서 권위 있는 <전국 도서상>과 <퓰리처상 특별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들은 조상들이 남겨준 빛나는 족보유산 덕분에 세계에서 족보의 종주국이라는 대우를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동방 예의지국이라는 자랑도 이제는 옛말이 되였듯이, 이제는 족보도 선진국에 이미 뒤떨어져 버렸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까지 가서 우리 뿌리를 찾아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염려 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