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역사는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도이(島夷) 동영주(東瀛洲) 섭라(涉羅) 탐모라(耽牟羅) 탁라(탁羅)국 이라 하는 전라도  남해중에 폭이 사백 여리의 땅에 태초에  良乙那  高乙那  夫乙那  라는  삼신인이 땅을 나누어 도읍을 하고  살았다.          출   고려사 .세종실록 지리지. 삼국사기. KBS 역사 스페셜  '제주에 천년 왕국이 있었다'

고려 사기에는(고려사첨부)  태초에  지금의 제주도 진산 북 산진에  세개의 혈(삼성혈) (인터넷 링크) 즉  세개의 땅 구멍이 있는데  여기서 삼신인이 솟아올라  피이 육식  즉 가죽 털옷을 입고  고기를 먹고 살고 있는데 ....         하루는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니  푸른 띠를 두른 목함이 떠오는 지라 이를 양육하여 열어보니  석함이 나와  깨뜨리니  푸른 옷에 붉은 띠를 한 사자(여기서는 인솔자로 해석)가 나오고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명과  망아지 송아지 등 짐승과 오곡의 종자를 갖이고  왔는데 이 사자의 말씀이 나는 동해국 사자인데  우리 임금님께서  이 세 딸을   낳으셨는데  서해중에  삼신인이 장차 나라를  열 것이나  배필이 없으니  이 삼 선녀를 데려가 배필을 지어 주고   훗일  대업을 이루라는 당부를 하시였다는  말을 남기고 이 사자는 구름 속으로 날아 사라지드라.    삼인이 년차 분취  순서적으로 장가를 드니  정감 토비라  샘물은 달고 땅은 비옥하드라.  활을 쏘아 땅을 정하니   양을나  소거 제일도   고을나 소거 제이도   부을나 소거 제삼도 이드라. 오곡을 파종하고 소와 짐승을 먹이니 날로 번창하였다.

 그로부터  십오 대손  양탕  고후 고청  형제와 삼인이 배를 만들어 탐진에서  관순사로  신라에 이르니  신라는 이때 번성한 시기라  이국인이 입조를 하니 이는 상서러운 일이라 하여  후이 대하고  보개  즉  장식이 잘된 모자 와 이대를 하사 하고   령으로  고후 고청과 함께  성주 왕자 도내(星主.王子.都內)의 작위를  하사받고  良을  梁으로   하였다.                출  고려사. 동국통감

일설에는 삼인이 활을 쏘아 땅을 나누어 왕업을 이루니  량 제일도 고 제이도 부 제삼도 인데 신라에 입조 하여 통린국으로 성주 왕자의 작위를 받고  량을 양성으로 개성하였다 한다....가장 고첩에는 삼신인이 나와 있었는데 고려때 良성을 가지신 분이 바다를 건너온  분이 있었는데  왕실에 공을 이루어 적을 하사받으니 대방 남원 부 이드라 하였다.

하여튼 하늘과 땅의 기운은 생을 이루니 억조 창생이  다  태여남이 있으리라  중국에서는 천지의 개벽으로 사람이 태여 낫다고 하고  단군 임금은 단목하에서  태여 낫으며 신라의 혁거세와 가락국의 수로왕은 알에서 나왔다 하나  우리의 시조는  지금도 그 유적이 뚜렸한  삼성혈(자체구성화면) 이 있으니  다른 시조와는 특이 하며  확실한 근거가 있도다.                 보첩서문중에서